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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솔페리노 둘러보기
1. 장 앙리 뒤낭
(Jean Henry Dunant, 1828 ~ 1910)
적십자 운동의 아버지 장 앙리 뒤낭. 그는 182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어. 뒤낭의 가문은 제네바의 명문 집안 가운데 하나였고, 그의 부모는 소년원, 병원 등에서 봉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었어. 이런 부모의 영향으로 뒤낭은 청소년기부터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했었는데, 18세 때에 제네바 자선협회 회원으로 가입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24세 때인 1852년에는 기독교 사회운동 단체인 YMCA(기독교 청년연합회) 창설에 참석하기도 했어.

1856년 프랑스령 알제리에 지역주민들의 빈곤퇴치를 위한 무역회사를 설립한 뒤낭은 1859년 사업상의 일로 황제인 나폴레옹3세를 만나기 위해 북이탈리아로 이동하던 길에 솔페리노 전투애서 생긴 수천 명의 부상자들이 버려져 있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돼. 이에 충격 받은 그는 주변 마을 부녀자들과 함께 아군과 적군을 차별하지 않고 구호활동을 펼쳤어.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솔페리노의 회상>을 출간하고, 부상자 구호를 위한 중립적 민간 국제기구 창설을 위해 노력했었어. 그리고 그 결실로 1863년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창설되었지.
장 앙리 뒤낭은 박애정신과 평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1901년 제1회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국제적으로 뒤낭의 생일인 5월 8일을 적십자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어.
2. 해골 예배당
(Ossuary Chapel, La Cappella Ossario di Solferino)
이곳은 예배당이라기 보다는 납골당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솔페리노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유골을 고이 모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고 해. 이 예배당의 벽 전체에 유골들이 그대로 안치되어 있어. 당시 전투에서 죽은 병가 수가 2만명이 넘는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하고 참혹한 전투였는지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 유골을 처음 봤을 땐 많이 놀랐는데, 이 분들의 희생으로 국제구호단체가 생겼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숙연해 지더라고..
3. 솔페리노 요새
(Solferino Fort, La Rocca di Solferino)
솔페리노 언덕에 요새가 하나 있는데, 이 요새가 솔페리노 전투의 중심이었어. 당시에 오스트리아가 이곳을 점령하고 있었고, 이탈리아와 프랑의 연합군이 요새를 빼앗기 위한 전투를 벌였었지. 수 천명의 병사가 고통을 호소하며 구조의 손길을 외쳤던 곳도 바로 이 요새였대. 지금은 평화로운 이 곳이 한 때는 참혹한 전쟁의 중심이었다니… 이곳에 오르면, 아름다운 솔페리노의 정경을 볼 수 있어. 날씨가 맑은 날은 가르다 호수까지 보인대!!